25장 10-22절
25장 10-22절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וְעָשׂ֥וּ אֲרֹ֖ון עֲצֵ֣י שִׁטִּ֑ים אַמָּתַ֨יִם וָחֵ֜צִי אָרְכֹּ֗ו וְאַמָּ֤ה וָחֵ֨צִי֙ רָחְבֹּ֔ו וְאַמָּ֥ה וָחֵ֖צִי קֹמָתֹֽו׃
25장 10-22절까지 말씀이 증거궤를 만드는 하나님의 설계도다. 가로가 125 cm, 세로가 75 cm, 높이가 75cm이다. 그리고 나무는 조각목으로 만들도록 했다. 조각목을 안팎 모두 순금으로 싸야 한다. 궤 양편에 채를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채는 고리에서 빼내지 않도록 했다. 법궤를 메는 채도 금으로 싸도록 했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이 적인
증거판과 아론의 싹이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히브리서 9:4)를 넣어 보관했다. 이 궤 위에 속죄소가 있다. 속죄소는 궤의 덮개인데 정금으로 만들도록 했다. 속죄소 위에는 두
그룹이 있는데, 두 그룹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시겠다고 했다.
궤는 법궤라고도 하는데, 증거궤이다. 돌판이 있기 때문이다.
증거궤는 속죄소와 함께 있다. 증거궤는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했는데, 우리말 조각목은 쉬띰(שִׁטִּ֑ים 기본형은 쉬타)이고, 궤(아론
אֲרֹ֖ון)는 히브리어로 아론이다. 영어로 궤를 ark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쉬띰은 아카시아(괴롭히는 가시가 있는 나무) 나무로서, 예수께서 성령으로 율법을 마쳐서, 율법을 이루는 말씀의 나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역시 그것을 이룬 자가 된다. 결국
생명나무에 해당된다. 쉬띰 나무로 궤를 만들라는 말은 생명나무로 궤를 만들라는 것이다. 궤 자체가 증거가 된다.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라고 했다. 대략, 가로가 125 cm, 세로가 75 cm, 높이가 75cm이다. 비록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크기는 작지만, 이는 새하늘과 새땅과 같은 개념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동서남북의 땅을 의미한다. 규빗은
암마(אַמָּ)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기본 어근은 어머니(엠:율법)에서 유래되었는데, 기초, 측량, 장대, 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말씀(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두 규빗 반, 한 규빗 반이라는 반은 하나가 둘로 나뉘어지는데, 이것이 하나로
되는 것이다. 창세기 49장 25절에서『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 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결국 하나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떨어진 자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궤는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며, 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11-12.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וְצִפִּיתָ֤ אֹתֹו֙ זָהָ֣ב טָהֹ֔ור מִבַּ֥יִת וּמִח֖וּץ תְּצַפֶּ֑נּוּ וְעָשִׂ֧יתָ עָלָ֛יו זֵ֥ר זָהָ֖ב סָבִֽיב׃
וְיָצַ֣קְתָּ לֹּ֗ו אַרְבַּע֙ טַבְּעֹ֣ת זָהָ֔ב וְנָ֣תַתָּ֔ה עַ֖ל אַרְבַּ֣ע פַּעֲמֹתָ֑יו וּשְׁתֵּ֣י טַבָּעֹ֗ת עַל־צַלְעֹו֙ הָֽאֶחָ֔ת וּשְׁתֵּי֙ טַבָּעֹ֔ת עַל־צַלְעֹ֖ו הַשֵּׁנִֽית׃
순금이라고 표현했는데, 히브리어는 자하브(금) 타호르(טָהֹ֔ור 흠없는)이다. 그것을 싸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바이트)을 덮어라는 말이다. 그래서 궤는 하나님의 집(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하나님 나라의 집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세상의 건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결국 돌 성전은 무너지고 만 것이다. 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흠없는 말씀은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로 세상과
분리되는 말씀이다. 성령이 이끄시는 말씀이다. 율법에 갇혀있는
자는 은혜의 분리를 모르는 자들이다.
금 고리 넷(아르바)은 동서남북 사방(하나)을 의미한다. 두 고리는 옆구리(다른
한편)이다. 이 편에, 저
편이다.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을 상징한다.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나는 것을
상징한다.
증거궤는 정금으로 싸여져 있다. 성경에서 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창세기 2장 10-11절에서『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비손 강은 하윌라 땅에
흘렀다. 하윌라는 이스라엘 내의 한 지명이겠지만, 모래 땅(사막)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금이 있다고 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도『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이므로 금(하나님 말씀)을 사라는 것이다. 불로 연단한 금은 성령에 의해서 밝히 드러나고 깨달아지는 말씀이다. 값없이
사라는 것이다.『순금』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며, 그 말씀이
사막에 있다는 것이다.
13-15.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וְעָשִׂ֥יתָ בַדֵּ֖י עֲצֵ֣י שִׁטִּ֑ים וְצִפִּיתָ֥ אֹתָ֖ם זָהָֽב׃
채 라고 번역된 바드(בַדֵּ֖)는 막대기, 장대를 의미한다. 절대로 빼면 안되는 것이다. 쉬띰 나무(그리스도)로
두 장대를 만드는데, 두 장대는 분리된 자를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이다. 원래 아담은 하나였는데, 분리되어 둘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장대를 끼워서 들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율법(죄에 대한 죽음)은 분리를 의미하며, 복음(부활)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
16-20.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증거궤가 보잘 것 없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향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천하만민에게 퍼지게 하신 의미로 받아드린다. 이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그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증거궤는 예수
그리스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맺으신 새 언약 때문에 성도들은 존귀한 존재들이 되었다.
증거궤와 속죄소, 그리고 그룹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은 서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 셋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보좌(의자)라도 있을 법한데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두 그룹이 날개를 편 채 마주보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림자인 성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오직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작은 궤를 만들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보좌로 삼으신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위에 계신다는 것이다. 궤의 양 옆에는 고리가 있고, 궤를 질 수 있는 채를 항상 고리에 꿰어 두라고 하셨다. 이것은
이동성을 고려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자리에 좌정해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같이 동행하셨다.
21-22.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성막의 구조는 제물을 드리고, 손을 씻고, 성소로 들어온 사람들의 죄를 덮어 주시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것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실 일을 보여 주는 것의 그림자다. 참된 속죄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속죄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 속죄제물의
피를 뿌려 대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회중의 죄를 속하는 곳이다. 죄인이 드나들어 부정하게 된 성소도 속죄소에
피를 뿌려 정결하게 했다. 레위기 16장 11-16절에서도 같은 표현이 있다.『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 같이 할 것이요』
이 일은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속죄소가 없다면 죄 사함도 없고, 성소 자체가 부정해서
제사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소에서 중보자인
모세와 만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말씀하겠다고 한다. 희생제물의 피가 뿌려진 속죄소 때문에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만남이 가능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계시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 뿌린 뚜껑 없이
증거판을 내려 보신다면 아무도 율법의 정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없이는 아무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로마서 5장 9절을 보면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 죄인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이 세상에서도 죄인이 어떤 이유로 죽어버리면, 공소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죄인이 예수와 함께 자가에서 죽는다면 하나님은 죄인이 죄가 있지만, 죄를 심판하지 않고 죄를 덮어시는 것이다. 이것이 증거궤 위의 속죄소
판(cover)이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될 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죄를 넘어가시는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로부터 벗어난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만나시며 말씀해 주시는
유일한 까닭은 하나님의 발등상에 항상 뿌려져 있는 대속의 피 때문이다. 출애굽 순간만이 아니라 그 이후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대속의 피를 보시기 때문에 죄 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멸하지 않으시고 넘어가신다. 그 피는 바로 죄인의 피가 되어야만 한다. 동물의 피지만, 죄인이 동물과 연합하여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속죄소 위에 매년
한 차례 뿌렸던 짐승의 피는 그리스도께서 한 번 보혈을 흘리셔서 성도를 영원히 온전케 하실 피 뿌림의 모형이다.
히브리서 10장 12-14절에서『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했다.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좌(은혜가 베풀어지는 자리)라고 불렀고, 긍휼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성도에게 그 보좌 앞에 나아가도록 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담대히 나가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야만
된다. 단순히 예수믿으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이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다. 모세도 다윗도 예언자로서 참 성전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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